상속 설계·분쟁 예방

암 진단 이후 가족이 순서대로 확인할 재산 정리 항목 — 진단 직후부터 임종 전후까지

가족이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치료 단계별로 무엇을 정해둘 수 있고 무엇은 본인이 판단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한지, 통장·부동산·유언·후견·보험을 시간축으로 정리합니다.

게시 수정 작성 변호사 조상현
병원 손목 밴드, 접힌 빈 서류, 만년필, 작은 열쇠, 엎어둔 가족사진이 한지 위에 순서대로 놓인 정물 — 진단 이후 차분히 확인할 항목들을 상징

진단 직후, 서둘러 정해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가족의 암 진단은 누구에게나 준비 없이 찾아옵니다. 치료 일정을 잡고 병원을 오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시기에 재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지금 당장 모든 것을 결정할 필요는 없고, 진단 사실을 누구에게 알릴지도 본인이 정할 일입니다.

다만 법은 한 가지 선을 긋습니다. 본인이 자기 행위의 의미와 결과를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상태, 즉 의사능력이 있는 동안에만 유언·위임·증여·계약 같은 결정을 본인이 할 수 있고, 그 상태가 지나면 가족이 대신하고 싶어도 법적으로 대신할 수 없는 일들이 생깁니다. 이 시리즈가 다루는 것은 세금이 아니라 '누가, 언제, 무슨 권한으로' 정할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실제로 이 단계의 법률 질문은 대부분 환자 본인이 아니라 자녀나 배우자에게서 나옵니다. 치료비를 부모 통장에서 써도 되는지, 지금 증여를 받아도 되는지, 병원에서 유언장을 쓸 수 있는지, 의식이 흐려지면 어떻게 되는지가 그것입니다. 이 글은 그 질문들을 시간 순서로 배열한 목차이고, 각 항목은 시리즈의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시간축으로 본 네 단계

단계본인이 할 수 있는 것가족이 할 수 있는 것이 단계가 지나면 어려워지는 것
진단 직후 (치료 계획 수립)재산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목록 적어두기본인 뜻을 묻고, 관리 담당자 한 사람 정하기— (아직 모든 선택지가 열려 있음)
치료 중, 판단력이 있을 때유언, 위임장, 임의후견계약, 신탁, 증여 결정본인 결정의 실행을 돕기(공증인 예약, 서류 준비)의사능력이 없는 동안 본인이 새로 하는 유언·계약·위임은 유효하게 할 수 없음 (회복된 시점은 행위별로 별도 판단)
거동·의식이 떨어질 때(맑은 시점이 있고 다른 방식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하다면) 구수증서 유언, 의사 소견 확보성년후견·특정후견 신청, 위임받은 범위 안의 관리새로운 위임·수권 — 기존에 받아둔 권한이 없으면 가족이 대신할 근거가 없음
임종 전후계좌 동결 이후 절차, 안심상속 조회, 상속 절차 개시사망 후 인출·처분은 상속인 전원의 문제로 바뀜

1단계. 재산 목록부터 —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본인이 적어두기

가장 먼저 할 일은 법률행위가 아니라 목록 작성입니다. 예금·적금 계좌, 부동산, 보험(계약자·피보험자·수익자가 누구인지), 대출과 보증, 주식·펀드, 자동차, 그리고 온라인 계정과 비밀번호 보관처까지 적어둡니다. 컨디션이 좋은 날 조금씩 적어도 되고, 가족 한 사람이 받아 적어도 됩니다.

이 목록이 중요한 이유는 생전에는 본인이나 본인에게서 적법하게 권한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금융자산을 조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망 이후에는 상속인이 주민센터의 안심상속 원스톱서비스로 금융·부동산·자동차·세금 등을 한 번에 조회할 수 있지만(정부24 기준 사망일이 속한 달의 말일부터 1년 이내 신청), 투병 중에는 본인이 알려주지 않으면 가족이 알 길이 없습니다. 목록이 없으면 치료 중 필요한 돈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찾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목록에는 '이 돈은 치료비로', '이 집은 누구에게' 같은 희망사항도 함께 적어두면 좋습니다. 그 자체로 법적 효력은 없지만, 나중에 유언이나 증여를 결정할 때의 출발점이 되고 가족 사이의 오해를 줄입니다.

2단계. 판단력이 있을 때만 할 수 있는 결정들

유언은 다섯 가지 방식(자필증서·녹음·공정증서·비밀증서·구수증서)이 있고, 병원에서도 요건을 갖추면 유효합니다. 어떤 방식이 현실적인지, 증인은 누가 될 수 없는지, 왜 병상 유언이 자주 무효가 되는지는 시리즈 3편 병원에서도 유언장을 남길 수 있을까에서 다룹니다. 유언을 해도 배우자와 자녀의 유류분은 남는다는 점은 유언공증·자필 유언장·유언대용신탁 비교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증여는 '지금 주면 끝'이 아닙니다. 상속인에게 한 증여는 상속개시 전 10년 이내분이 상속세 과세가액에 합산되고(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3조), 유류분을 계산할 때는 공동상속인에 대한 증여 중 상속분을 미리 준 것으로 평가되는 특별수익은 증여 시기에 관계없이 산입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입니다(대법원 1995. 6. 30. 선고 93다11715 판결). 다만 공동상속인이 받은 증여가 모두 특별수익은 아니고, 2026년 3월 17일 시행된 개정 민법 제1008조 단서는 특별한 부양이나 재산 형성 기여에 대한 보상으로 한 증여를 기여에 상응하는 범위에서 특별수익에서 제외하며, 부칙에 따라 2024년 4월 25일 이후 상속이 개시된 경우에 적용됩니다. 즉 투병 중의 증여는 세법상으로도 민법상으로도 나중에 다시 계산됩니다. 그래도 증여가 맞는 경우가 있고, 그 판단은 가족 구성과 재산 종류에 따라 달라집니다.

위임장은 지금 특정한 사무를 맡기는 수단이고, 임의후견계약은 '내가 판단하지 못하게 되면 누가 대신하는가'를 미리 정하는 수단입니다. 위임장은 작성 즉시 효력이 있지만 은행·등기 실무에서 본인 확인을 요구받는 한계가 있고, 임의후견계약은 공정증서로 맺어 가정법원이 감독인을 선임한 때부터 효력이 생깁니다(민법 제959조의14). 시리즈 4편 의식이 흐려지기 전에 해두어야 하는 것에서 시기별로 비교합니다.

신탁은 재산을 금융기관 등에 맡기고 생전 관리와 사후 귀속을 한 번에 정하는 방법입니다. 상품 구조와 비용은 금융기관마다 다르고, 유류분과의 관계는 여전히 분쟁 소재이므로 법률 검토가 필요합니다.

3단계. 가족이 통장을 관리하기 시작할 때 지켜야 할 것

  • 본인 동의를 서면으로 남깁니다. 어느 계좌를, 어떤 용도로, 누가 관리하는지 한 장이면 됩니다. 본인이 서명할 수 있을 때 받아두는 것이 핵심입니다.
  • 치료비·간병비·생활비는 가능하면 별도 계좌로 관리하고 영수증을 모아둡니다. 카드 결제 내역도 기록이 됩니다.
  • 인출·이체 내역을 월 단위로 정리해 다른 가족과 공유합니다. 나중에 '왜 네가 마음대로 썼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을 막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 사망 전 1년 이내에 재산 종류별로 2억 원 이상, 2년 이내에 5억 원 이상을 인출·처분했는데 용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지 않으면 상속세 계산에서 상속재산으로 추정됩니다(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5조). 치료비로 썼더라도 증빙이 없으면 용도 불분명으로 취급될 수 있습니다.
  • 목돈을 자녀 계좌로 옮기는 것은 관리가 아니라 증여로 추정될 수 있습니다. 관리 목적이라면 그 사실을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이 부분은 시리즈 2편에서 유형별로 정리합니다.

4단계. 임종 전후 — 계좌는 멈추고 절차가 시작됩니다

사망 사실이 은행에 알려지면 계좌는 거래가 정지되고, 예금은 상속인 전원의 문제가 됩니다. 대법원은 예금 같은 금전채권이 상속개시와 동시에 법정상속분에 따라 공동상속인에게 분할 귀속된다고 봅니다(대법원 2023. 12. 21. 선고 2023다221144 판결). 한 상속인이 다른 상속인과 상의 없이 사망 후 인출하면 다른 상속인에 대한 반환 문제가 생기고, 사망자의 카드로 인출한 행위가 형사 문제로 다뤄진 하급심 사례도 있습니다.

사망 이후의 절차 — 사망신고, 안심상속 조회, 상속포기·한정승인의 3개월 기한, 상속세 신고기한 — 은 사망 후 할 일 순서 글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임종을 앞둔 시점에 미리 읽어두면 당황하지 않습니다.

보험금과 진단금은 누구 것인가

암 진단비는 본인이 생전에 받는 돈이므로 본인 재산입니다. 이 돈을 치료비로 쓰든 가족에게 주든 본인이 정하되, 자녀 계좌로 옮기면 앞서 본 증여·추정상속재산 문제가 그대로 따라옵니다.

사망보험금은 다릅니다. 보험수익자가 '상속인'으로 지정된 사망보험금은 상속재산이 아니라 상속인의 고유재산이라는 것이 대법원 판례입니다(대법원 2001. 12. 28. 선고 2000다31502 판결). 그래서 상속포기를 해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세법은 피상속인이 보험료를 납부한 사망보험금을 상속재산으로 보아 과세하므로(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8조), 민법과 세법의 취급이 다르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합니다.

변호사가 함께 보는 것

이 단계에서 변호사가 하는 일은 세액을 계산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의 의사능력이 유지되는 동안 어떤 서류를 어떤 순서로 만들지, 가족 중 누가 관리하고 어떻게 기록할지, 유언·증여·후견·신탁 중 이 가족에게 먼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리하는 일입니다. 세액 계산은 세무 전문가와, 재산의 귀속과 가족 간 합의 구조는 변호사와 상의하시면 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진단 사실을 가족 모두에게 알려야 하나요?

법적으로 알릴 의무는 없습니다. 재산 관리 관점에서는 통장과 서류를 맡을 사람 한 명은 알고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이 다른 가족과 기록을 공유하는 구조가 가장 분쟁이 적습니다. 누구에게 언제 알릴지는 본인이 정할 일입니다.

본인이 힘들어서 아무것도 못 하겠다고 하시면 어떻게 하나요?

강요할 수 없습니다. 다만 본인이 서명할 수 있을 때 위임장 한 장과 재산 목록만 남겨두어도 가족이 할 수 있는 범위가 크게 달라집니다.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유언·증여 같은 결정은 미루고, 관리 권한만 먼저 정리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치료비를 부모님 통장에서 쓰는 것은 괜찮은가요?

본인 동의가 있고 용도가 치료비·간병비로 증빙되면 정당한 관리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동의를 서면으로 남기고 영수증을 모아두는 것이 핵심이며, 위임받은 범위와 실제 지출이 맞는지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사망 전 1~2년 안의 인출은 상속세 계산에서 용도를 소명해야 할 수 있으므로(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5조) 기록이 없으면 나중에 곤란해집니다.

지금 증여하면 상속세가 줄어드나요?

세액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세무 전문가와 확인하실 부분입니다. 법적으로 알아두실 것은, 상속인에게 한 증여는 상속개시 전 10년 이내분이 상속세 과세가액에 합산되고, 특별수익으로 평가되는 증여는 유류분 계산에 증여 시기와 관계없이 산입된다는 점입니다(개정 민법 제1008조 단서의 보상증여는 예외이며, 2024년 4월 25일 이후 개시된 상속에 적용됩니다). 증여로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산 시점이 뒤로 미뤄지는 것에 가깝습니다.

참고 자료

우리 가족에 맞는 설계 순서가 궁금하다면

가족 구성, 재산 종류, 건강 상태에 따라 유언·후견·신탁·증여 중 먼저 할 것이 달라집니다. 사안을 듣고 분쟁 가능성과 세법 적용을 함께 검토해 순서를 정리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