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설계·분쟁 예방

의식이 흐려지기 전에 해두어야 하는 것 — 의사능력, 위임, 성년후견

투병 중 판단력이 남아 있을 때 할 수 있는 위임장·임의후견·유언과, 의식이 저하된 뒤 가족이 할 수 있는 성년후견·특정후견 신청을 시기별로 비교하고 연명의료 서류와의 차이를 정리합니다.

게시 수정 작성 변호사 조상현
모래가 절반쯤 내려간 나무 모래시계, 리본으로 묶인 빈 위임 서류, 만년필과 돋보기안경 — 판단력이 남아 있을 때의 준비를 상징

법은 '의사능력'으로 선을 긋습니다

치료 과정에서 진정제 투여, 섬망, 의식 저하는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가족으로서는 곁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힘든 시간이지만, 법적으로는 의사능력이 없는 동안 본인이 새로 하는 법률행위 — 부동산 매매, 예금 해지, 유언, 위임 — 가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의사능력을 자기 행위의 의미나 결과를 정상적인 인식력과 예기력을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으로 정의합니다(대법원 2022. 12. 1. 선고 2022다261237 판결). 이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한 법률행위는 무효이고, 가족이 권한 없이 대신 서명한다고 유효해지지 않습니다. 회복된 시점에 한 행위는 그 시점의 능력을 기준으로 따로 판단합니다.

이 글은 '본인이 아직 판단할 수 있을 때' 열려 있는 수단과 '이미 어려워졌을 때' 남는 수단을 시기별로 비교합니다. 앞의 수단은 본인이 정하고, 뒤의 수단은 가정법원이 정합니다. 그 차이가 이 글의 전부입니다.

시기별로 열려 있는 수단

수단가능한 시점누가 정하나효력한계
위임장본인이 판단할 수 있을 때본인작성 즉시은행·등기 실무에서 본인 확인 요구. 의사능력 저하로 자동 소멸하지는 않으나 실제 사용이 어려워짐
임의후견계약 (민법 제959조의14)본인이 판단할 수 있을 때본인 (공정증서)가정법원이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한 때부터공증·등기·감독인 선임 절차 필요
유언본인이 판단할 수 있을 때본인사망 시생전 재산 관리에는 효력 없음
신탁본인이 판단할 수 있을 때본인 (수탁자와 계약)계약 시비용, 유류분과의 관계
성년후견 (제9조)판단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때가정법원심판 확정 시본인의 법률행위 취소 가능(제10조), 거주 부동산 처분은 법원 허가
한정후견 (제12조)판단력이 부족한 때가정법원심판 확정 시동의가 필요한 행위 범위를 법원이 정함
특정후견 (제14조의2)특정 사무·기간에 도움이 필요한 때가정법원심판 확정 시본인 의사에 반해 할 수 없음, 정해진 사무에 한정

위임장은 만능이 아닙니다

가장 간단한 준비는 위임장입니다. 어느 계좌를 누가 어떤 용도로 관리하는지, 어떤 부동산을 팔 권한을 주는지 적고 본인이 서명하면 됩니다. 인감증명서나 본인서명사실확인서를 붙이면 은행과 등기소에서 통용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러나 위임장에는 두 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첫째, 은행과 등기 실무는 고액 거래나 부동산 처분에서 본인 확인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고, 위임장만으로 거절당하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둘째, 본인의 의사능력이 저하되었다고 해서 이미 준 위임이나 대리권이 법적으로 자동 소멸하는 것은 아니지만(민법 제127조·제128조·제690조는 본인의 의사능력 상실을 소멸·종료 사유로 두지 않습니다), 수권 범위를 벗어나는 일은 할 수 없고 본인이 새로 지시하거나 범위를 넓힐 수도 없으며 금융기관이 본인 확인을 이유로 거절하는 일이 잦습니다. 그래서 위임장은 '범위가 정해진 사무의 관리 수단'으로 보고, 그 이후를 대비하는 것은 임의후견이나 특정후견으로 준비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임의후견 — 본인이 정하는 후견, 병원에서도 공정증서로

임의후견계약은 본인이 판단력이 있을 때 '내가 판단하지 못하게 되면 이 사람이 이런 범위의 일을 대신한다'고 정하는 계약입니다. 반드시 공정증서로 체결해야 하고(민법 제959조의14 제2항), 가정법원이 임의후견감독인을 선임한 때부터 효력이 생깁니다(제3항). 공증인은 병원으로 출장할 수 있으므로 입원 중에도 체결할 수 있습니다. 치매를 앞둔 준비로서의 임의후견은 치매 진단 전후 부모 재산 관리 글에서 다루었고, 여기서는 투병 중 갑작스러운 의식 저하에 대비하는 관점에서만 짚습니다.

투병 중에는 시간이 관건입니다. 임의후견계약은 체결 후 후견등기를 하고, 본인의 판단력이 떨어졌을 때 가족이 감독인 선임을 청구해야 효력이 생기므로, 계약만 해두고 나머지를 미루면 정작 필요할 때 시간이 걸립니다. 계약 체결과 동시에 누가 감독인 선임을 청구할지, 어떤 자료(진단서·의무기록)를 준비할지 정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성년후견·특정후견 — 이미 의식이 흐려졌다면 가정법원으로

본인이 더 이상 새로운 위임이나 계약을 할 수 없고 기존에 받아둔 권한도 없거나 부족하다면 남는 것은 법정후견입니다. 성년후견은 질병 등으로 사무 처리 능력이 지속적으로 결여된 사람에 대해, 한정후견은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 대해, 특정후견은 일시적 후원이나 특정 사무에 관한 후원이 필요한 사람에 대해 가정법원이 개시합니다(민법 제9조, 제12조, 제14조의2). 청구할 수 있는 사람은 본인, 배우자, 4촌 이내의 친족, 검사, 지방자치단체의 장 등이고(제9조 제1항), 관할은 피후견인이 될 사람의 주소지 가정법원입니다(가사소송법 제44조).

투병 중인 환자에게는 특정후견이 맞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년후견은 본인의 법률행위를 후견인이 취소할 수 있게 하는 등 본인의 권한을 넓게 제한하는 반면, 특정후견은 '이 부동산의 매도', '이 보험금의 청구'처럼 사무와 기간을 정하고 가정법원이 그 범위에서 특정후견인에게 대리권을 부여하는 것이어서(민법 제959조의11) 본인의 지위를 최소한으로만 건드립니다. 다만 특정후견은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는 할 수 없으므로(제14조의2 제2항), 본인이 의사를 표시할 수 있다면 그 뜻을 확인해야 합니다.

후견인이 되어도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피성년후견인이 거주하는 건물이나 그 대지를 매도·임대하거나 담보를 설정하려면 가정법원의 허가가 있어야 합니다(민법 제947조의2 제5항). 병원비 마련을 위해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후견 개시와 별도로 처분 허가까지 염두에 두고 일정을 잡아야 합니다.

후견이 개시되면 후견등기가 되고, 은행이나 거래 상대방이 후견 여부를 확인할 때 후견등기사항증명서를 요구합니다. 이 증명서는 본인, 배우자와 4촌 이내 친족, 후견인·후견감독인 등만 발급받을 수 있고 제3자가 임의로 열람할 수는 없습니다(후견등기에 관한 법률 제15조).

연명의료·의료 결정은 별도 서류입니다

재산에 관한 위임이나 후견과 의료에 관한 결정은 서류가 다릅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19세 이상인 사람이 연명의료 중단 등의 결정과 호스피스에 관한 자신의 의사를 직접 문서로 작성하는 것으로,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등록기관에서 본인이 작성합니다(연명의료결정법 제2조 제9호, 제12조). 연명의료계획서는 법에서 정한 환자의 의사에 따라 담당의사가 의료기관에서 작성합니다(제2조 제8호, 제10조).

가족이 자주 혼동하는 지점은 '위임장을 받아두면 치료 결정도 대신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재산 위임장은 의료 결정의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고 재산 관리 권한이 생기지도 않습니다. 두 가지는 각각 준비해야 합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본인이 판단할 수 있을 때 본인이 직접 작성하고, 연명의료계획서는 환자의 의사에 따라 담당의사가 작성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의식이 또렷할 때 해두면 좋은 7가지

  • 재산 목록: 계좌·부동산·보험·대출·디지털 계정과 비밀번호 보관처를 적어둡니다(시리즈 1편).
  • 위임장과 인감: 관리할 계좌와 용도를 정한 위임장에 인감증명서 또는 본인서명사실확인서를 붙여둡니다.
  • 임의후견계약 또는 특정후견 준비: 공정증서로 임의후견계약을 맺거나, 필요한 사무가 특정된다면 특정후견 청구에 쓸 진단서·의무기록을 준비합니다.
  • 유언: 방식과 증인 요건을 갖추어 남깁니다(시리즈 3편).
  • 주치의의 의사능력 소견: 위임·유언·계약을 하는 시기에 맞춰 소견서를 받아둡니다.
  • 연명의료 서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등록기관에서 본인이, 연명의료계획서는 담당의사와 상의해 작성합니다.
  • 가족 회의 기록: 누가 무엇을 맡는지 정한 내용을 날짜와 함께 남기고 참석자가 확인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의식이 오락가락하는데 유언이나 위임이 가능한가요?

맑은 시점에 의사능력이 있으면 가능합니다. 다만 나중에 '그때는 판단할 수 없었다'는 다툼이 생기기 쉬우므로, 그 시점의 주치의 소견서와 의무기록, 대화 영상을 함께 남기고, 유언은 공증인과 증인이 참여하는 공정증서 방식을 쓰는 것이 안전합니다. 무효를 주장하는 쪽이 의사능력 없음을 증명해야 하지만, 자료가 없으면 분쟁 자체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성년후견을 신청하면 얼마나 걸리나요?

법원의 심리 기간은 사안과 법원에 따라 다르며 수개월 단위로 잡아야 합니다. 정신감정이 필요하면 더 걸립니다. 급한 처분이 있다면 사무를 특정한 특정후견 청구나 사전처분 신청을 함께 검토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후견인이 되면 부모 재산을 자유롭게 쓸 수 있나요?

아닙니다. 후견인은 본인의 이익을 위해 재산을 관리하고 가정법원의 감독을 받습니다. 거주 부동산의 처분은 법원 허가가 필요하고(민법 제947조의2 제5항), 후견인 자신을 위한 사용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법원이 정한 범위와 시기에 따라 재산 관리 내역을 보고하게 됩니다.

입원비를 내려고 집을 팔아야 하는데 본인이 서명을 못 하면 어떻게 하나요?

본인에게서 미리 받아둔 매도 권한이 없다면 가정법원에 특정후견 또는 성년후견을 청구해 후견인이 매도할 권한을 받아야 합니다. 본인이 거주하던 집이라면 후견인이 되어도 별도로 법원의 처분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가족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위임장을 만들어 대신 파는 것은 본인에게 효력이 없고 사안에 따라 형사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우리 가족에 맞는 설계 순서가 궁금하다면

가족 구성, 재산 종류, 건강 상태에 따라 유언·후견·신탁·증여 중 먼저 할 것이 달라집니다. 사안을 듣고 분쟁 가능성과 세법 적용을 함께 검토해 순서를 정리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