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설계·분쟁 예방
부모님 투병 중 통장에서 돈을 옮겨도 되는지 — 인출·이체 전에 알아둘 것
치료비·생활비로 부모 통장에서 돈을 빼거나 자녀 계좌로 옮길 때 생기는 법적 문제 — 본인 동의, 증여 추정, 상속 추정 재산, 사망 후 인출의 책임을 유형별로 정리합니다.

왜 이 질문이 가장 많은가
부모님이 입원하면 누군가는 통장을 맡게 됩니다. 병원비를 내야 하고, 생활비가 나가야 하고, 때로는 부모님이 '이건 네가 가져라'고 하십니다. 그 과정에서 자녀 계좌로 돈이 옮겨지는 일은 아주 흔하고, 대부분 나쁜 의도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문제가 나중에 형제 간 분쟁과 세무조사의 단골 소재가 되는 이유는, 같은 행위가 세 가지 법 영역에서 각각 다르게 평가되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본인 의사입니다. 부모님이 동의했는지, 동의할 수 있는 상태였는지가 민사상 유효성을 가릅니다. 둘째는 세법입니다. 옮긴 돈이 관리를 위한 보관인지 증여인지, 사망 전 인출이 상속재산으로 추정되는지가 문제됩니다. 셋째는 사망 이후입니다. 사망 후의 인출은 다른 상속인과의 관계에서 전혀 다른 성격을 갖습니다.
이 글은 그 세 층을 인출 유형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본인 동의를 서면으로 남기고, 용도를 증빙하고, 다른 가족과 기록을 공유한다'는 세 가지를 지키면 분쟁 위험과 소명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인출 유형별로 달라지는 것
| 상황 | 본인 동의 | 법적 성격 | 나중에 문제되는 지점 | 남겨야 할 기록 |
|---|---|---|---|---|
| 본인이 직접 인출해 치료비 지급 | 본인 행위 | 본인의 재산 처분 | 사망 전 1~2년 내 고액이면 용도 소명(상증세법 제15조) | 영수증, 진료비 내역 |
| 자녀가 본인 카드·통장으로 치료비 지급 | 필요(위임) | 위임에 따른 관리 | 위임 범위 밖 지출, 증빙 없는 현금 인출 | 위임 서면, 영수증, 지출 내역표 |
| 자녀 계좌로 목돈 이체 — 관리 목적 | 필요 | 보관·위탁 (증여 아님) | 증여로 추정될 수 있음, 잔액 귀속 | 관리 목적 확인 서면, 별도 계좌, 잔액 반환 기록 |
| 자녀 계좌로 목돈 이체 — 증여 의사 | 필요 | 증여 | 증여세 신고 여부, 상속세 합산(10년), 유류분 산입 | 증여 의사 확인, 증여세 신고 |
| 의식 없는 상태에서 자녀가 인출 (기존에 받아둔 권한 없음) | 새 동의 불가 | 권한 없는 처분 | 다른 상속인의 반환 청구, 무권대리 문제 | — (기존 권한이 없으면 하지 말아야 할 유형) |
| 사망 후 자녀가 인출 | 해당 없음 | 법정상속분대로 각 상속인에게 분할 귀속된 예금의 무단 인출 | 다른 상속인에 대한 반환, 형사 문제 가능성 | — (상속인 협의 후 절차로) |
본인 동의가 핵심 — 위임장과 기록
자녀가 부모 통장을 관리하는 법적 근거는 '위임'입니다. 위임은 구두로도 성립하지만, 나중에 다른 형제가 '아버지가 정말 허락하셨느냐'고 물을 때 답이 되는 것은 서면입니다. 거창한 양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어느 계좌를, 어떤 용도(치료비·간병비·생활비)로, 누가 관리하는지를 적고 부모님이 서명하면 됩니다. 인감증명서나 본인서명사실확인서를 함께 받아두면 은행 실무에서도 도움이 됩니다.
은행은 본인이 아닌 사람의 고액 인출이나 해지에 본인 확인을 요구합니다. 위임장이 있어도 은행마다 요구 서류가 다르므로, 큰 금액을 움직여야 한다면 미리 해당 은행에 필요한 서류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새로운 위임은 본인이 판단할 수 있을 때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식이 흐려진 뒤에는 위임장을 새로 받을 수 없고, 가족이 대신 서명한 위임장은 효력이 없습니다. 그 전에 적법하게 받아둔 위임이 본인의 의사능력 저하만으로 자동 소멸하지는 않지만(민법 제127조·제690조는 본인의 의사능력 상실을 소멸·종료 사유로 두지 않습니다), 은행이 본인 확인을 요구해 실제로 쓰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기존 권한이 없거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라면 가정법원의 성년후견이나 특정후견 절차가 필요합니다. 이 부분은 시리즈 4편 의식이 흐려지기 전에 해두어야 하는 것에서 다룹니다.
증여 추정 — 자녀 계좌로 옮긴 돈은 일단 증여로 봅니다
부모 계좌에서 인출된 돈이 자녀 계좌로 입금된 사실이 확인되면 과세관청은 일단 증여로 추정하고, 관리 목적이었다는 특별한 사정은 자녀 쪽에서 입증해야 합니다(대법원 2001. 11. 13. 선고 99두4082 판결). 어떤 자료로 반박하는지는 증여 추정 반박 글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투병 중 관리 목적 이체라면 특히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관리 목적임을 확인하는 부모의 서면, 그 돈만 따로 두는 별도 계좌, 그리고 치료비 지출과 잔액 반환의 기록입니다.
반대로 부모님이 정말 주려고 하신 것이라면 증여로 처리하는 것이 깔끔합니다. 현행 증여재산공제는 배우자 6억 원, 직계존속에게서 받는 경우 5천만 원(미성년자 2천만 원), 4촌 이내 혈족 또는 3촌 이내 인척 1천만 원이며 10년간 합산합니다(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53조). 10년 안에 이미 쓴 공제액과 재산 평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므로 신고 필요 여부와 세액은 세무 전문가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증여로 정리하면 상속개시 전 10년 이내분은 상속세 과세가액에 합산되고(제13조), 상속분을 미리 준 것으로 평가되는 특별수익이면 유류분 계산에 시기와 관계없이 들어간다는 점(개정 민법 제1008조 단서의 보상증여는 예외)을 함께 알아두어야 합니다.
관리인지 증여인지 애매하게 두는 것이 가장 나쁩니다. 세법에서는 증여로, 형제 사이에서는 '네가 가져간 돈'으로 각각 불리하게 취급될 수 있습니다.
상속 추정 재산 — 사망 전 1년·2년 안의 인출은 상속세에서 다시 묻습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5조는 피상속인이 사망 전 1년 이내에 재산 종류별로 2억 원 이상, 2년 이내에 5억 원 이상을 처분하거나 인출했는데 그 용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지 않으면 그 금액을 상속재산으로 추정합니다. 재산 종류는 현금·예금·유가증권, 부동산·권리, 그 밖의 재산으로 나누어 계산하고, 예금은 기간 내 인출 합계에서 다시 입금한 금액을 뺀 순인출액으로 봅니다(시행령 제11조).
용도를 입증하지 못한 금액이 인출액의 20%와 2억 원 중 적은 금액에 미치지 못하면 추정하지 않고, 그 이상이면 그 기준액을 뺀 나머지를 용도 불분명 금액으로 봅니다(시행령 제11조 제4항). 즉 어느 정도의 소명 부족은 허용되지만, 치료비·간병비로 썼더라도 영수증이 없으면 그 부분은 상속재산에 다시 더해질 수 있습니다.
이 규정 때문에 투병 기간의 지출 기록이 중요합니다. 병원비는 진료비 내역서로, 간병비는 계약서와 이체 내역으로, 생활비는 카드 내역으로 남겨두면 소명이 됩니다. 세액이 어떻게 계산되는지는 세무 전문가와 확인하실 부분이고, 이 글에서 말씀드리는 것은 '기록이 없으면 소명할 수 없다'는 구조입니다.
사망 후 인출은 다른 문제입니다
사망하는 순간 예금은 상속인 전원의 것이 됩니다. 대법원은 예금 같은 금전채권이 상속개시와 동시에 법정상속분에 따라 공동상속인에게 분할 귀속된다고 봅니다(대법원 2023. 12. 21. 선고 2023다221144 판결). 따라서 한 상속인이 사망 후에 혼자 인출하면 다른 상속인의 몫을 가져간 것이 되어 반환 문제가 생깁니다.
형사 문제도 있습니다. 사망자의 카드로 현금을 인출하고 이체한 행위를 절도와 컴퓨터등사용사기로 본 하급심 판결이 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2. 3. 29. 선고 2011노3337 판결). 가족이라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장례비가 급해도 상속인들끼리 합의한 뒤 은행의 상속 절차를 밟는 것이 원칙입니다.
'사망 직전에 미리 빼두자'는 생각은 앞의 상속 추정 규정과 정면으로 부딪힙니다. 사망 직전 인출은 용도 소명이 가장 어렵고, 다른 상속인에게는 '몰래 가져간 돈'으로 보입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기록 습관 6가지
- 위임 서면 한 장: 계좌, 용도, 관리자를 적고 부모님 서명을 받습니다.
- 치료비 전용 계좌: 부모 계좌에서 필요한 만큼만 옮기고, 그 계좌에서만 지출합니다.
- 영수증 봉투: 진료비 내역서, 간병비 이체 내역, 약국·용품 영수증을 한곳에 모읍니다.
- 월별 정리표: 인출·지출·잔액을 한 장으로 정리해 다른 가족에게 보냅니다.
- 본인 확인 서명: 부모님이 서명할 수 있는 동안 월별 정리표에 확인 서명을 받아둡니다.
- 잔액 반환 기록: 관리 목적으로 받은 돈 중 남은 금액은 부모 계좌로 돌려보내고 그 내역을 남깁니다.
자주 묻는 질문
생활비로 매달 이체하던 것도 증여인가요?
부모 생활비를 자녀 계좌로 받아 부모를 위해 쓴 것이라면 관리에 해당하고, 그 돈을 자녀가 자기 생활비로 쓴 것이라면 증여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구분 기준은 돈이 실제로 누구를 위해 쓰였는지와 그 기록입니다. 매달 같은 금액이 자녀 계좌에 쌓였다면 증여로 추정되기 쉬우므로, 부모를 위한 지출 내역을 남겨두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님이 '너 가져라' 하셔서 옮겼는데 형제가 문제 삼으면 어떻게 되나요?
본인이 판단할 수 있는 상태에서 준 것이면 유효한 증여입니다. 다만 다른 형제는 '그때 부모님은 판단하실 수 없었다'거나 '그런 말씀을 하신 적 없다'고 다툴 수 있고, 유효하더라도 상속분을 미리 준 것으로 평가되면 유류분 계산과 상속재산분할에서 특별수익으로 반영됩니다. 증여받을 때 부모의 의사를 확인하는 서면과, 가능하면 의사 소견이나 제3자의 확인을 남겨두면 다툼이 줄어듭니다.
사망 직전에 장례비를 미리 빼두는 것은 괜찮은가요?
권하지 않습니다. 사망 직전 인출은 상속세에서 용도 소명 대상이 되고, 다른 상속인에게는 동의 없는 인출로 보입니다. 장례비는 법정 범위와 한도 안에서 상속재산에서 공제되는 항목이므로(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4조) 사망 후 상속인들이 합의해 은행의 상속 절차로 처리하거나 일단 자녀가 지출한 뒤 정산하는 것이 낫습니다.
요양비·간병비는 상속세에서 빼주나요?
피상속인이 생전에 자기 재산으로 지출한 요양비·간병비는 이미 재산에서 나간 돈이므로, 증빙이 있으면 상속 추정 재산의 용도 소명이 됩니다. 사망 시점에 남은 미납 병원비는 채무로 공제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공제 여부와 세액은 세무 전문가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자료
-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5조(상속개시일 전 처분재산 등의 상속 추정)
-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 제11조(상속세 과세가액에 산입되는 재산 또는 채무의 범위)
-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3조(상속세 과세가액), 제14조(상속재산의 가액에서 빼는 공과금 등), 제53조(증여재산 공제)
- 민법 제127조(대리권의 소멸사유), 제690조(사망·파산 등과 위임의 종료), 제1005조(상속과 포괄적 권리의무의 승계)
- 대법원 2001. 11. 13. 선고 99두4082 판결(계좌 입금과 증여 추정)
- 대법원 2023. 12. 21. 선고 2023다221144 판결(금전채권의 상속개시 시 분할 귀속)